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자만 대신, 판단을 유보하려는 노력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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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땐 친구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내가 속한 물리적 환경 안에 주어진 사람들에 가까웠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은 반이라, 같은 학원을 다니는 환경적인 이유로 나는 누군가와 친구가 되었다. 집을 놀러가며 함께 어울리는 시간 안에서 관계는 의도하건 혹은 마뜩찮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툭탁거리거나 심한 경우 싸움도 불사했었지만, 그럼에도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화해하며 다시금 관계는 이어졌다. 나의 호불호로 그 시간을 지연시킬 수는 있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누군가의 방황으로 관계가 영영 어그러질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울 점은 분명 있었다. 인내와 깊이가 비례할 때가 많다는 사실도 그 중 하나였다.

시대는 변했고, 과거 우리를 둘러싸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의 굴레는 깨어졌다. 드넓은 온라인 세상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관심사와 취향, 선망의 대상을 기반으로 어느 누군가와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도, 그리고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던 사람일지라도, 특정 키워드 아래 모인 사람들과 더 편하고 자유롭게, 심지어 서로 알던 가까운 이와도 나누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알고리즘 역시 나의 선호도를 확장시켜 시의적절하게 나와 맞을만한 낯선 이를 소개한다.  

관심사와 취향 비슷한 이와의 대화는 얼마나 재미나던지, 그 즐거움에 취한 적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 시간이 꽤 쌓인다한들, 깊이까지 비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로가 내보이고 싶은 만큼만 내보이는 사이, 갈등이 있을리 만무하고 부대낌이나 불편함도 없는 매끈한 관계, 관계 속에서 부유하는 영감은 애드벌룬 풍선처럼 근사해보이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수면 위는 평온한, 그래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관계건만 나는 언제서부턴가, 그리고 무언가가 부대끼기 시작했다.

서로 응원하는 사이엔 문제가 없지만, 응원만 하는 사이는 공허하다 느꼈다. 시간이 쌓인만큼 깊이를 바랄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좋아요’로만 지속되는 관계는 자신있게 실재한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이따금 대면할지라도 갈등을 감수하지 않는 관계 또한 그렇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망과 관계 없음 사이 어중간한 위치에서 나는 우정을 쌓는 체한다. 정작 나누는 실체 없이 ‘좋아요’만을 남발했다.

과거의 의미있었던 관계를 반추해봤을 때, 나의 경우 크건 작건 깊이있는 인간관계는 사소한 갈등과 이해, 이해 너머 포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일도 그렇지만 관계에서도 사람은 갈등을 붙들고 그것을 감수하며 이해하거나 타협하기도 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우리 모두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범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내 안의 좋은 면만을 전시하고 노출하며 관계를 맺어왔다. 갈등이 있을리 만무했고, 갈등의 싹이 나기 전부터 이미 상대에 대한 재단과 판단을 마치곤 했다. 온라인에 전시된 라이프스타일, 짧게 나눈 몇 번의 대화로 상대를 단정지었다. 인내를 발휘할 계기와 환경부터 나는 그렇게 솎아내고 잘라내며 타인을 단정지었다.

관계에서 나와 ‘같은 결’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곧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귀결되는 걸 나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순간 자연스레 비슷한 생각을 흐는 이들만 바랐던 것처럼 굴었다. 타인을 향한 ‘믿음’은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고 믿지만 그것을 적극적인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강요일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외부와 내면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날 안내했다. 관계의 매끄러움은 순간순간의 즐거움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의도치 않은 부상과 낙마의 위험 또한 제거했던 시간이 있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관계’를 회고하는 중에 성급하게 타인을 판단하고 분류했던 스스로를 반성해야했다. 마냥 호인으로 보이기만을 바랐던 나를,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모난 구석을 감추고 매끈하게 보이려 했던 나를 반성한다. ‘같은 결’의 사람과의 안전하고 안온한 관계만을 지향했다. 인내 없이 무한한 가능성의 타인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구분지으려 했다.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나는 그저 각자의 다름에 대해 세세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단정적이고 획일적인 판단 기준을 버리고 흐르는 존재로서 타인을 받아들인다면, 보이지 않았던 미세한 틈과 행간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태도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세심한 시야와 함께 바라본다면 (적어도) 성급한 판단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경험이 내겐 있다. 되찾은 자세와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표현으로 타인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내겐 있다. 소소하고 하찮은 것, 무용하고 쓸모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누군가가 가진 경험의 역사를,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헤아려보려는 노력과도 상통한다. 그렇게 타인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성취와 성과를 바라보는 것 대신, 무용하고 작은 일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야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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