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여유도 잃은 우리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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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곳곳에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나만의) 방법은, 한 주간 책에 얼마나 심취했느냐로 귀결된다. ’양‘에 두지 않고 ’심취‘에 방점을 둔 건, 다독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읽은 양보다는 내게 와닿은 문장에 내가 얼마나 머무느냐, 그 머문 시간 동안 나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데 독서의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장 안에 머물렀던 시간이 있었는지가 내겐 삶의 여유를 확인하는 방편이 된다.

사람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빈약한 독서의 원인을 시간의 문제로 한정한다면 책을 읽기는 앞으로 더 어려워지리라. 책을 읽기가 힘든 건, 시간이 아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가 더 가깝지 않을까.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채워야 하는 도파민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간다. 삶이 강팍할수록, 바삐 살수록, 한 번에 여러 가지 일들을 문제없이 해내야 하는 책임감에 비례해서.

하루하루 30분 남짓 한 시간을, 그리고 매주 금요일 저녁을 나는 독서하는 시간으로 따로 떼 놓았지만 지키는 날보다 지키지 못한 날들이 더 많다. 지나고 나서 그 이유를 헤아려보면, 그만큼 정신을 다른 일들에 지나치게 쏟았던 시기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집중력의 시간은 하루하루, 그리고 매주 환산해 봐도 정해져 있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많고 적음은 있을지라도 정해져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집중력을 우린 돈으로 환산한다.

생업을 위한 자본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필요와 욕망의 경계가 불명확하기에 우린 욕망의 비용마저도 필요의 영역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생업과 (수동적) 욕망과 유희를 위한 비용이 늘게 되면서 더 많은 집중력의 시간을 우린 돈으로 환산하기를 열망한다. 돈으로 환산 않는 쥐꼬리 같은 자유 시간마저 미디어에 잠식당한 채 내일의 노동을 위한 도파민을 수혈한다. 이 쳇바퀴 같은 순환에 갇히게 되면서 우린 시간도, 여유도 잃었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의 시간과 강박적으로 즐겨야 하는 유희의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 손에 남아있는 자유 시간은 없다. 책 읽을 시간은 고사하고 차분히 동네를 산책하는 시간,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 무언갈 끄적이는 시간은 마음의 여유라는 토대 위에 비로소 보이는,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는 미디어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자유 활동들이다. 단지 시간만 생긴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이 결코 아니다.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결단’의 문제에 더 가까운 일이다. 쳇바퀴 같은 순환에서 빠져나올 결심, 5초마다 모양을 바꿔 내 시간을 잡아먹으려는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으리라는 결단, 그 시간을 순간적인 도파민이 아닌 나를 돌아보는 활동으로 환산하려는 잦은 시도, 그 시도로부터 얻은 마음의 여유를 삶 곳곳에 녹이려는 노력들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가치있게 사용하는 방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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