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럴 일 없어.”
단언이 위험한 세상이다. 계엄령이 현실에 일어나는 시국에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이 되었건 내 일이 될 수 있고, 네 일이 될 수 있으며 우리의 일도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 비단 지금 시국에 국한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출하고픈 이야기를 위해 사람들이 드넓은 광장에 모인다. 누군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에 남녀노소 구분과 경계 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외친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다. 변화를 촉구하는 일. 같은 지향점으로 바위를 깨려는 시도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음지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누군가의 권리를 우린 쉽게 외면해오진 않았는지, 자꾸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이동권을 위한 누군가의 당연한 요구, 기본적인 삶을 위해 응당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 누군가의 외침을 그간 나는 민감하게 듣지 못했다. 무엇을 주장하건, 그것이 당장 내 일이 아니라는 명확한 무언의 구분으로 나는 단언했다. 그럴 일 없다고. 그러나 삶에서 그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이번 일을 통해 새삼 느낀다. 그럴 때 해야 하는 건, 이번 시국처럼 함께 행동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필요를 전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 모으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경청해 줄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된다.
살면서 불의의 사고로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질 때도 더러 있을 수 있고, 일시적인 아닌 지속적인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우리네 삶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다‘고,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감히 단언한다. 그럴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걸.
‘그래봐야 달라질 것 없다.’와 ‘그럼에도 달라질 수 있다.‘ 사이의 간극은 언뜻 작아보이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차이와 힘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바위는 확실히 깨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가능성이야말로 주류 권력을 무너뜨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안다. 그 관점을 그대로 확장시켰을 때,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바라는 사회 변화 또한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 위에서 자생한다는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가능성 위에 비로소 모두의 인식과 공감대를 위한 작은 틈이 생길 수 있다.
강력한 국가권력과 여전히 보수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소수자의 확실성을 쉬이 용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더 좋은 세상보다 덜 추악한 세상의 가능성을, 우리도 언젠간 맞이하게 될 그 세계의 가능성을. 그 세계는 비관적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덜 추악한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한 소수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조금이라도 덜 추악할 세계를 위해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의 귀를 보태고, 나의 입과 글을 보태고 싶다.
필연적으로 나이 들어가며 시력과 청력이 감퇴되는 날들이 찾아온다. 우리 모두 언젠간 약자가 되는 그날, 나는 조금은 우리에게 편안한 세상이길 바란다. 그날을 위해 지금부터 미리,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권한다. 공고해 보이는 주류, 거대하게만 보였던 권력이 무너지는 날은 분명 온다. 그때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 기억이 찬란하고 아름답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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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 없어.”
단언이 위험한 세상이다. 계엄령이 현실에 일어나는 시국에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이 되었건 내 일이 될 수 있고, 네 일이 될 수 있으며 우리의 일도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 비단 지금 시국에 국한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분출하고픈 이야기를 위해 사람들이 드넓은 광장에 모인다. 누군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에 남녀노소 구분과 경계 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외친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다. 변화를 촉구하는 일. 같은 지향점으로 바위를 깨려는 시도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음지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권리와 목소리를, 누군가의 권리를 우린 쉽게 외면해오진 않았는지, 자꾸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이동권을 위한 누군가의 당연한 요구, 기본적인 삶을 위해 응당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한 누군가의 외침을 그간 나는 민감하게 듣지 못했다. 무엇을 주장하건, 그것이 당장 내 일이 아니라는 명확한 무언의 구분으로 나는 단언했다. 그럴 일 없다고. 그러나 삶에서 그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이번 일을 통해 새삼 느낀다. 그럴 때 해야 하는 건, 이번 시국처럼 함께 행동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필요를 전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 모으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경청해 줄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된다.
살면서 불의의 사고로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질 때도 더러 있을 수 있고, 일시적인 아닌 지속적인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우리네 삶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다‘고,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감히 단언한다. 그럴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걸.
‘그래봐야 달라질 것 없다.’와 ‘그럼에도 달라질 수 있다.‘ 사이의 간극은 언뜻 작아보이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차이와 힘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바위는 확실히 깨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 가능성이야말로 주류 권력을 무너뜨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안다. 그 관점을 그대로 확장시켰을 때,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바라는 사회 변화 또한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 위에서 자생한다는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가능성 위에 비로소 모두의 인식과 공감대를 위한 작은 틈이 생길 수 있다.
강력한 국가권력과 여전히 보수성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는 소수자의 확실성을 쉬이 용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더 좋은 세상보다 덜 추악한 세상의 가능성을, 우리도 언젠간 맞이하게 될 그 세계의 가능성을. 그 세계는 비관적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덜 추악한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한 소수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조금이라도 덜 추악할 세계를 위해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나의 귀를 보태고, 나의 입과 글을 보태고 싶다.
필연적으로 나이 들어가며 시력과 청력이 감퇴되는 날들이 찾아온다. 우리 모두 언젠간 약자가 되는 그날, 나는 조금은 우리에게 편안한 세상이길 바란다. 그날을 위해 지금부터 미리,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권한다. 공고해 보이는 주류, 거대하게만 보였던 권력이 무너지는 날은 분명 온다. 그때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 기억이 찬란하고 아름답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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