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지기 인터뷰] 어떤 그릇에나 담길 수 있는 물과 같은 출판을 꿈꿉니다

2024-09-04
작은 서점 뒤에 존재하는 큰 사람을 조명합니다.

오늘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이자 빈티지샵 ‘브이콥(VCOB)‘을 소개합니다. 이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 반기훈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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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기훈 님,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기훈 안녕하세요 저는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빈티지샵 브이콥(VCOB)을 운영하는 반기훈입니다. 허클베리북스라는 출판사의 대표이자 10년차 종이책 편집자이기도 해요.

 

Q. 이 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서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빈티지 의류샵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공간인데요. 정확히 이 공간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기훈 브이콥(VCOB)은 Vintage Clothing Objects Books의 약자입니다.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들이 모여 있는 곳이죠. 말씀하신대로 누군가에겐 옷가게가, 누군가에겐 소품샵이, 누군가에겐 서점이 될 수 있겠네요.

 

Q. 정확히 언제 오픈하신거죠? 

기훈 2023년 11월 가게를 계약하고 오픈 준비를 했어요. 2024년 1월 6일에 오프닝 파티를 열었으니까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200일 남짓 되었습니다.

 

Q. 브이콥 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훈 처음에는 '반물관'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어요. 반기훈의 물건들이 모인 반쯤은 박물관 같은 곳. 그런 곳을 상상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름을 달면 외국 손님들이 공간 정체성을 파악하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이태원에 가게를 여니까 조금 더 글로벌하게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붙여야겠다 싶었고요.


Q. 반물관은 저도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반대를 했었는데 브이콥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기훈 네(웃음), 그래서 붙인 이름이 브이콥(VCOB)이었어요. 브이콥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Vintage Clothing Objects Books의 약자기도 하지만, cob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다리가 짧고 튼튼한 말’ 혹은 ‘둥근 빵’을 뜻하기도 해요. 두 가지 다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 마음에 들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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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 그럼, 이 공간을 창업하게 된 계기를 여쭤볼게요. 의류는 이해가 가는데 왜 하필 서점의 정체성을 더하셨나요? 

기훈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던 저한테는 오히려 의류를 다루는 것보다 서점을 차리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웃음) 먼저 의류를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2022년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남자의 복장술>이라는 책이 나왔어요. 일본 클래식 패션계의 구루 오치아이 마사카츠가 쓴 책인데, 이 책을 편집하면서 수트나 구두 같은 의복에 빠져들었어요. 새 옷을 사면 비싸니까 매일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를 뒤지면서 옷을 사 모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빈티지 패션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점점 옷들이 늘어서 옷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죠. 옷가지는 많은데, 몸뚱이는 하나니 옷을 좀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옷가게에 서점을 더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공간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두고 좋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보니 그게 오래된 옷, 오래된 소품, 오래된 책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생겼어요.


Q. 제가 아는 기훈 님은 어떤 분야로 특정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과 패션, 소품이라는 대상들이 잘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책은 원래부터 깊게 수집하시던 편이었잖아요?

기훈 저는 스물에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주말이면 헌책방에 갔어요. 헌책방은 일단 책 가격이 저렴했고, 일반 서점에서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책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곳의 책들은 고유성이 있었어요. 독특하게 색이 바래 있다든가, 저자의 서명이나 구매자의 낙서가 들어 있다든가, 누가 꽂아두었는지 모를 낙엽이 들어 있다든가... 그 고유한 책들로 가득한 공간을 겪으면서 저도 모르게 이야기가 담긴 고유한 물건에 대한 애착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미 이러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Q. 그럼 많은 동네 중에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선정하신 이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기훈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싱어송라이터 김거지와 함께 집을 얻어 이태원 우사단마을에 살았어요. 거기서 제 인생에 처음으로 ‘마을’이라는 개념을 겪었어요. 이웃들과 함께 ‘계단장’이라는 플리마켓을 치르기 위해 마을회의를 하고, 매일같이 집으로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어요. 이 마을은 조선 태종 때 기우제를 지내던 우사단이 있었는데, 마을이 하늘과 가까워 멋진 풍광을 가진 건물 옥상이 많았어요. 이 옥상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옥상유랑단’이라는 공연 프로젝트도 기획했어요. 이때의 좋은 기억이 공간을 찾는 데 아무래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이태원이 마음의 고향과도 같았겠네요.

기원 그리고 후보군에 있던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제 기준에는 이태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어요. 브랜드도 트렌드도 아닌 자기만의 고유한 멋으로 패션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거든요. 제가 다루는 의류, 소품, 책 모두 이 고유의 멋쟁이들에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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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간 오픈 후 가장 처음 맞닥뜨렸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기훈 보시다시피 이 공간은 3층에 있어요. 굳이 애써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들어오기 힘든 곳이죠. ‘아무나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애써 들어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용기 있게 3층으로 잡긴 했는데, 어떤 때는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어요. 분명히 입간판과 행잉 간판 모두 불을 켜두었는데, 어떤 손님들은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올라왔어요” 하고 말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게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테라스를 활용해보기로 했어요. 가게 테라스는 네 군데로 나 있는데, 그 테라스 펜스 각각에 Vintage, Clothing, Objects, Books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었죠. 지금은 이 현수막을 보고 들어왔다는 손님이 많아요.

 

Q. 어떻게 보면, 3층에 공간을 얻은 이상 사전에 예상하셨던 어려움이었을 것 같은데요? 

기훈 오픈 초기 사람이 잘 오지 않았던 건 분명 어려움이긴 했지만, 오히려 성기게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방문한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도 했어요. 더 나은 가게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 손님들과 의견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었죠. 아직 직원이 없는 가게라 손님들이 옷을 다려주거나 가격 택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가게도 봐주고 하면서 이 공간은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가게라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지금은 손님들과 100일 단위로 심포지엄을 열어요. 심포지엄의 주제는 늘 같아요. ‘브이콥 이대로 좋은가.’ 100일 심포지엄에는 13명이, 200일 심포지엄에는 27명이 함께 해주셨어요. 300일 때는 몇 분이 함께 해주실지 기대가 되네요.

 

Q. 창업 전에 가장 이상적인 서점, 혹은 이런 형태의 복합 공간이라고 생각한 곳이 있으셨나요? 

기훈 제가 서울에 올라와서 주말마다 헌책방에 다녔다고 했잖아요. 그중에 가장 자주 가던 헌책방이 신촌의 ‘숨어 있는 책’이었어요. 그곳에는 제가 좋아할만한 책들이 많기도 했지만, 저는 그 공간의 작은 배려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좌측편에 가방을 넣어둘 수 있는 작은 수납함이 있어요. 들고 있던 가방이나 짐을 거기에 넣어두고 책을 보기 시작하죠. 책장들 사이사이로 드문드문 작은 의자가 놓여 있는데, 동선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잠시 앉아 책을 보기 적합해요. 저는 이러한 작은 배려들이 좋은 서점을 만드는 구성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희 빈티지샵에서는 손님들이 오시면 가장 좌석을 마련해드려요. 여기가 선생님 자리라고 생각하시고 가방이나 짐을 내려두고 편안히 가게를 둘러보시라고 말씀드리죠. 책이 꽂혀 있는 곳 부근에는 목욕탕 의자나 아주 작은 뜀틀 같은 걸 놓아둬요. 다 ‘숨어 있는 책’에서 영감을 받은 거예요.


Q. 공간을 방문하시는 분들을 응대하는 방식도 전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장이라는 분위기보단 친구같은 페르소나로 대하시는 것 같아서요.

기훈 가게의 접객 태도는 교토의 에이스 호텔에서 많이 배웠어요. 3일 정도 머무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 직원들의 접객 태도를 통해 ‘친절함’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그전까지 저는 친절함이라고 하면 고분고분하다거나 깍듯이 모신다는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에이스호텔 직원들은 과한 친절을 베푸는 대신 편안한 유니폼을 입고 동네 친구 대하듯 고객을 응대하더라고요. 친절함은 친구처럼 다정하다(friendly)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요.

브이콥의 커뮤니티로서의 정체성은 관철동 시절 민음사를 많이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온갖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이 섞여 서로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민음사를 만든 박맹호 회장이 이런저런 수습을 해나가는... 브이콥을 그런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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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곳에서 책과 관련해서 겪으셨던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나 감사했던 고객이 있으셨나요? 

기훈 제가 운영하고 있는 허클베리북스의 첫 책이 <무타협 미식가>라는 책인데, 그 책의 추천사를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이 써주셨어요. 그 인연을 계기로 출판사에 오셔서 직접 만나 뵙기도 했어요. 출판사에 놓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미술 평론집 <풍경>을 한참 들여다보시던 기억도 나네요. 선생님은 2021년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올봄 들렀던 헌책방에 선생님 책이 있길래 뽑아서 펼쳐보았어요. 그 책 내지 제일 앞에 선생님 사인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집 설계를 의뢰한 국어 교사인 송승훈 선생님과 교신을 하면서 집을 짓는 내용인데, 어떻게 집을 지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 이일훈 선생님의 태도가 인상 깊은 책이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저희 빈티지샵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는데,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한 손님이 그 책을 읽다가 사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책을 팔지 말지를 고민하다 보내주기로 했어요. 저와 선생님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선생님과 새로운 인연을 이어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기억이 나네요. 

 

Q. 작은 서점이다보니 도서를 입고하는 데 양적인 한계가 있잖아요. 한정된 도서를 입고하고 큐레이션하실 때 주안점이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기훈 이 공간을 열고 가장 먼저 가지고 온 책들이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 <뿌리깊은나무> 전질, 영화가 문화산업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고 가던 90년대의 대표적 영화 잡지 <키노> 전질, 아직 여권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세계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줬던 여행기인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질. 이 책들은 우리 문화 정체성 형성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출판물들이거든요. 이 책들이 중심축을 잡고 있으면 그로 인해 좋은 손님들이 모일 거고 그 손님들과 어울리는 책들을 공간에 더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Q. 도서의 정체성이 사람들을 불러모은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그렇다면 기훈 님이 정의하는 ‘서점’은 어떤 공간인가요? 또 어떤 지향점을 포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기훈 제가 정의하는 서점은 ‘사람이 책을 매개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저희 가게 테라스 펜스에 걸린 Vintage, Clothing, Objects, Books 현수막 가운데 Books를 보고 이 공간에 올라왔다가 옷이나 다른 소품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반대로 옷을 사러 왔다가 책을 사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제가 지향하는 서점은 이 호환성에 주목해요. 저는 곧 가게에 걸린 옷들을 책처럼 소개할 거예요. 저희 가게에는 이야기가 담긴 옷들이 많이 걸려 있는데, 옷걸이를 책등처럼 활용해 옷마다의 스토리를 적어둘 거예요. 점점 책과 옷과 소품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갈 거예요. ‘우리가 주목하는 건 각각 분절된 책과 옷과 소품이 아니라 거기 담긴 이야기다’라는 점을 점차 현시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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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 이야기를 해보죠. 기훈 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있으신가요

기훈 제가 펴낸 책 한 권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일본에서 벌레문고라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다나카 미호가 쓴 <나의 작은 헌책방>이라는 책이에요. 스물한 살의 나이에 헌책방을 차린 저자가 10년 동안 헌책방을 운영하며 겪은 일과 책을 통해 만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에요. 저자는 붙임성 제로, 사교성 제로, 숫자에 약하고, 경쟁은 절대 못하는 성격인데 그럼에도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나름의 생존 방법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인생에서 정말 성공한 사람은 돈이 많다거나, 명예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찾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지금 저는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브이콥으로 인해 찾은 느낌이거든요.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로서, 또 독자로서 이 책에서 받은 영향이 이 가게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Q. 기훈 님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훈 2018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가서 한 연사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가 있어요. ‘이제 와 책은 물과 같아서 어떤 그릇에나 담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저는 오래 품고 있어요.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또 콘텐츠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 같아요. 콘텐츠를 어떤 그릇에나 담아서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 콘텐츠를 보여주는 데 전시가 어울리면 전시로, 공연이 어울리면 공연으로, 책이 어울리면 책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해요.


Q. 예전부터 이야기하시던 바이기도 하죠. 물성에 집착하기보다 본질을 봐야한다고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기훈 콘텐츠 회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저는 책을 ‘물’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요. 종이책을 볼 때는 이 책을 어떤 그릇에 따라서 새로운 한 그릇을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거기에 다른 책이나 또 다른 콘텐츠를 섞을 수도 있고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본다면 책은 삶의 유연함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단단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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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공간에서 다양한 모임도 진행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대표적인 모임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기훈 가게 영업이 끝나면 손님들과 모여 앉아 ‘야학’을 진행해요. 첫 야학은 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함께 진행했던 ‘듣다가요’였어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우리 대중가요 속에 당시의 시대상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죠. 두 번째 야학은 ‘뿌리깊은나무 톺아읽기’였어요. <뿌리깊은나무> 잡지를 함께 읽으며 이 잡지를 만든 한창기 선생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 토박이 문화와 우리 글에 대한 사랑을 세상에 전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지금은 ‘시 쓰기, 말하기, 듣기’라는 세 번째 야학을 하고 있어요. 시 작법을 가르쳐주는 수업이 아니라 서로의 시와 삶을 존중하는 말하기와 듣기를 중요시하는 시 합평 모임이에요. 이 모임이 끝나면 책과 옷을 주제로 한 야학을 하나씩 더 오픈하려고 해요.

 

Q. 공간을 오픈하신 뒤 삶에서 감각하고 또 체감되는 변화가 혹시 있으셨나요?

기훈 이 공간을 오픈하기 전에는 저를 위한 소비를 할 때가 많았어요. 구매자도 저고 사용자도 저니까 제 취향에 맞는 물건을 사고, 제가 읽을 책을 사고, 제 사이즈의 옷을 샀죠. 브이콥을 오픈한 뒤에는 ‘이건 어떤 손님하고 어울리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물건을 사오는 일이 많아졌어요. 사실 저는 누군가의 생일에 맞춰 선물이나 편지를 준다거나 하는 습관이 잘 없었는데, 요즘은 늘 누군가에게 보낼 선물과 편지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기훈 님만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어떤 창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기훈 네 창대한 계획이 있어요. 1단계는 빈티지 장사로서의 성공이에요. 월세도 내고 새로운 물건도 들이고 하려면 어느 정도 이 공간에서 돈벌이가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2단계는 사랑의 가치를 담은 라이프스타일/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물건은 떠난다 이야기는 남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물건은 팔려서 떠나지만 손님들과의 인연과 함께 나눈 사랑과 우정은 이곳에 쌓여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상품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 마지막 단계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요. 

기훈 3단계로는 독일의 베르텔스만이나 프랑스의 아세트처럼 종합 출판콘텐츠 그룹을 만들고 싶어요. 이들 출판 그룹 안에는 영화사도 있고 방송사도 있고 여행사도 있는데요. 이런 종합 출판콘텐츠 회사를 만들어서 ‘어떤 그릇에나 담길 수 있는 물과 같은 출판’을 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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