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만나는 이 문장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 책은 ‘적어도’ 재미나겠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던 몇 안 되는 책이었다. 물론 재미나다고 느낄만한 시간과 타이밍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외롭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 내가 어떤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 없는 좀비가 되지 않는 비결은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떤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 다. 혼자일 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힘.”
_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언뜻 보면 별다른 연결고리 없는 문장들의 나열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차가 없는 연유 또한 그래서였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열된 문장들에서 하나의 맥락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독자 자신의 몫으로 상정한다면, 이보다 더 자유로운 형식의 책이 있을까. 각자 유달리 강하게 와닿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취약점, 혹은 결핍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무언가를 판단할 때 우린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나는 평소에도 의문을 품는 편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 만큼은 난 그 부담을 내려놓는다. 무척이나 주관적이고도 편향된 관점으로 나는 이 책 속 문장들에 경탄한다.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교육 운동가라는 다소 모호한 타이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저자 김규항은 ‘김규항 아포리즘’이라 자신 있게 이 책을 명명했다.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는 의미의 아포리즘은 저자가 책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가장 안성맞춤의 그릇이 되었다. 예수전과 혁명노트 등을 집필하며 드러낸 그의 에고와 꽤나 방대한 세계의 기반은 이 책에서 그에게 적당한 권위를 받침 한다. 진영의 논리로 그를 판단할 수 있었던 게 지난 과거라면, 이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시대정신의 외피를 벗고 그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속 본질을 파고든다.
“내일(미래)을 걱정하느라 일생동안 오늘(현재)을 생략하는 어리석은 삶이 자본주의가 만든 노예제다. 왜들 그리 체제 안에 못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한 칸이라도 못 올라가서 난리일까, 꼭대기까지 가봐야 부자의 상머슴 노릇인데. 오늘 하루 배곯지 않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산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인 걸.”
“사람은 걱정이 일상화하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잊는 속성이 있다. 걱정하는 습관만 남아, 걱정을 걱정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걱정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지배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배당하지 않을 순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잊지 않는다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_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고들다가도,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노동자들의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명치에 제대로 꽂혀서 얼얼한 상태도 잠시, 그의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이내 성찰과 자기반성에 빠지게 된다. 150페이지 남짓의 얄팍한 책이지만 완독에 이르는 거리는 결코 짧지 않았다. 책 읽는 도처에서 생각하고 반성하느라, 타개책을 세우고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던 시간이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때론 넘어야 할 고비였고 때론 새로운 탄약고와도 같았다. 한 번 완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곱씹으며 다시 읽기를 반복했던 까닭은, 단순한 이해와 인지를 넘어 각인시키기 위함에 있었다. 한동안 이 책을 손에 들고 다녔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섭고 강렬한 문장들을 조금씩 허물어뜨려 소화시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백미는 바로 ‘고독할 기회’라고 표현한 책의 제목에 있다. 이 제목으로 책의 메시지는 진영과 남녀를 떠나 모두가 외롭다고 소리 없이 아우성대는 시대정신과 조응할 수 있었다. 소음, 광고와 다를 바 없는 (자칭) 전문가들의 혹세무민하는 주장들을 뚫고 복부에 꽂히는 그의 묵직한 한방은 매섭고 뼈아프다. 지나친 연결과 동기화의 요구에 우린 너무나도 잘 순응하고 있거니와 순응을 넘어 중독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린 맹목적이고도 무비판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다. 그 길의 끝에 낙원이 존재할지, 감당 못할 카드 전표들과 피폐해진 정신세계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길고 짧은 걸 굳이 대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무용하다. 그러나 다가올 위기를 미리 예단하고 중독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흐름에 조금이나마 항거할 의지가 있는 이라면, 이 책이 꽤 유용할 것이다.
Copyright 2024. 시일 북스앤웍스. All rights reserved.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만나는 이 문장에 나는 매료되었다. 이 책은 ‘적어도’ 재미나겠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던 몇 안 되는 책이었다. 물론 재미나다고 느낄만한 시간과 타이밍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외롭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 내가 어떤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 없는 좀비가 되지 않는 비결은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떤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 다. 혼자일 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힘.”
_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언뜻 보면 별다른 연결고리 없는 문장들의 나열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목차가 없는 연유 또한 그래서였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열된 문장들에서 하나의 맥락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독자 자신의 몫으로 상정한다면, 이보다 더 자유로운 형식의 책이 있을까. 각자 유달리 강하게 와닿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취약점, 혹은 결핍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무언가를 판단할 때 우린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나는 평소에도 의문을 품는 편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적어도 이 책에 대해서 만큼은 난 그 부담을 내려놓는다. 무척이나 주관적이고도 편향된 관점으로 나는 이 책 속 문장들에 경탄한다.
사회문화 비평가이자 교육 운동가라는 다소 모호한 타이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저자 김규항은 ‘김규항 아포리즘’이라 자신 있게 이 책을 명명했다.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라는 의미의 아포리즘은 저자가 책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가장 안성맞춤의 그릇이 되었다. 예수전과 혁명노트 등을 집필하며 드러낸 그의 에고와 꽤나 방대한 세계의 기반은 이 책에서 그에게 적당한 권위를 받침 한다. 진영의 논리로 그를 판단할 수 있었던 게 지난 과거라면, 이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시대정신의 외피를 벗고 그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속 본질을 파고든다.
“내일(미래)을 걱정하느라 일생동안 오늘(현재)을 생략하는 어리석은 삶이 자본주의가 만든 노예제다. 왜들 그리 체제 안에 못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한 칸이라도 못 올라가서 난리일까, 꼭대기까지 가봐야 부자의 상머슴 노릇인데. 오늘 하루 배곯지 않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산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인 걸.”
“사람은 걱정이 일상화하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잊는 속성이 있다. 걱정하는 습관만 남아, 걱정을 걱정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걱정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지배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배당하지 않을 순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잊지 않는다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_김규항,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고들다가도,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노동자들의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명치에 제대로 꽂혀서 얼얼한 상태도 잠시, 그의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이내 성찰과 자기반성에 빠지게 된다. 150페이지 남짓의 얄팍한 책이지만 완독에 이르는 거리는 결코 짧지 않았다. 책 읽는 도처에서 생각하고 반성하느라, 타개책을 세우고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던 시간이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때론 넘어야 할 고비였고 때론 새로운 탄약고와도 같았다. 한 번 완독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곱씹으며 다시 읽기를 반복했던 까닭은, 단순한 이해와 인지를 넘어 각인시키기 위함에 있었다. 한동안 이 책을 손에 들고 다녔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섭고 강렬한 문장들을 조금씩 허물어뜨려 소화시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백미는 바로 ‘고독할 기회’라고 표현한 책의 제목에 있다. 이 제목으로 책의 메시지는 진영과 남녀를 떠나 모두가 외롭다고 소리 없이 아우성대는 시대정신과 조응할 수 있었다. 소음, 광고와 다를 바 없는 (자칭) 전문가들의 혹세무민하는 주장들을 뚫고 복부에 꽂히는 그의 묵직한 한방은 매섭고 뼈아프다. 지나친 연결과 동기화의 요구에 우린 너무나도 잘 순응하고 있거니와 순응을 넘어 중독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린 맹목적이고도 무비판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다. 그 길의 끝에 낙원이 존재할지, 감당 못할 카드 전표들과 피폐해진 정신세계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길고 짧은 걸 굳이 대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무용하다. 그러나 다가올 위기를 미리 예단하고 중독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흐름에 조금이나마 항거할 의지가 있는 이라면, 이 책이 꽤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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